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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기 #독서일기

[책] 정치적 올바름에 대하여

예스24에서 가져온 '정치적 올바름에 대하여' 책 표지

*위 이미지 출처입니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71996775

 

정치적 올바름에 대하여

‘정치적 올바름은 과연 진보라고 할 수 있는가’세계 지성들의 치열한 찬반 토론‘정치적 올바름’, 즉 PC를 둘러싼 4인 4색의 뜨거운 논쟁이 펼쳐진다. 정치적 올바름은 편견 없는 언어를 사용하자는 최초의 취지에서 점점 외연을 넓혀 각종 소수자 우대 정책으로까지 이어졌다. 이는 소위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다는 의미가 있지만,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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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올바름 Political Correctness 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던 차에 강렬한 제목에 끌려서 읽었다. 우선 책의 내용은 정치적 올바름에 관한 찬반 토론으로 이루어져있다. 토론 과정을 생생하게 담아냈다는 점에서 흥미롭고 읽는 동안 내내 몰입할 수 있다는 건 장점이었지만, 내가 기대했던 내용과는 달라서 실망스러웠다. 자세한 내용은 책을 직접 확인하는 것이 빠를 것이고, 아래는 나의 주관적 감상이다.

 

정치적 올바름은 과연 진보라고 할 수 있는가

책의 내용은 이 논제에 대한 찬반 토론으로 이루어져 있다. 백인 남성 조던 피터슨, 백인 게이 스티븐 프라이는 이에 반대하는 입장이고, 흑인 사회학자 마이클 에릭 다이슨, 백인 여성 칼럼니스트 미셸 골드버그는 찬성하며 정치적 올바름을 옹호하는 입장이다. 일단 여기서 첫번째로 실망했던 점은 논객의 구성이었다. 적어도 '편하게 말할 자유가 없어서 귀찮아요.' 수준의 논의를 말만 번지르르하게 반복해서 전개하는 기득권층을 배제할 필요는 있지 않았을까? 개인적으로 조던 피터슨의 말에 '니 말이 처음부터 끝까지 틀렸어 이 **야!' 외치고 싶었다. 스티븐 프라이의 논의는 일견 타당해보이는 순간이 있었지만 끝날 때까지 같은 내용의 반복이고 피상적인 논의였다. 생각을 거기까지밖에 안해보셨나봐요. 다음으로는 논의의 흐름이 문제였다. 정치적 올바름이 진보가 아니라는 입장에서는 진보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고, 진보라고 주장하는 쪽의 논객은 다른 논의에 시간을 많이 빼앗긴 것 같아서 멋진 논의라기보다는 속이 답답한 논의였다. 미셸 골드버그는 찬성 측의 입장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있었으나 여성 인권 관련 부분에서는 맞는 말 많이 해주셨다. 그 외에는 다이슨의 사이다 발언이 몇번 재미있었으나, 이 분도 정체성 정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생산적인 논의를 끌어내지는 못했다. 후반부에는 마이클 다이슨이 백인 정체성 자체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이를 거의 인신공격으로 받아들인 다른 논객 간의 분위기가 싸해지기까지 했다. 기득권은 정말 이토록 snowflake인가?! *이 책에서 얻은 자산이라고 한다면 snowflake라는 단어를 알게된 것이다. 조금만 뭐해도 징징대는 유리멘탈 개복치같은 백남들을 가리키는 말인데(아님) 참... 할많하않

*책에 의하면 "대학생들을 눈송이라고 부르는 백인 남성들 있죠? 그런데 정작 가장 심하게 눈송이 같은 백인 남자가 누굽니까?" <<이런 식으로 조롱하는 표현이다. 실제로는 모욕이나 공격에 민감하고 정치적 올바름의 감각을 지닌 젊은이를 말한다고 한다. 알죠? 우리 모두 뭔지 알 것 같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들었던 사이다 발언!

"자, 그러니 백인 여러분, 뭐라고 말할 건가요? 이제는 무슨 마법이라도 부리겠다는 겁니까? 억울하다고 분개할 건가요? 물론 그렇겠죠. 그런데 그 억울함이 마땅하고 타당한 항의라고 생각합니까? 아니에요. 당신들은 그저 불평하는 거예요. 누구든지 이점을 누리다가 그걸 포기해야 하면 화가 나죠." - 마이클 에릭 다이슨

 

논객들은 미국, 캐나다 등 한국과는 다른 배경에서 자랐고, 이들이 상정하는 사회의 분위기는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이름으로 합의된 수준이 높다. 흑인을 멸시해서는 안 되고, 장애인이나 성소수자를 멸시해서는 안 된다는 합의가 이미 일어난 사회에서 정치적 올바름이 정당한지 논의하는 내용과 여전히 소수자에 대한 멸시와 차별이 밈이나 개그 소재로 사용되는 한국 사회에서 논의할 수 있는 내용은 다를 수밖에 없다. 나는 조금 더 한국 사회에서 현재 현실과 밀접하게 논의되는 정치적 올바름에 관해 알고 싶었으나, 책을 읽다 보니 세계 사회를 무대로 이런 논의에 참여하기에 한국 사회는 그 정도의 최소한의 합의까지도 도달하지 못했고, 정치적 올바름에 관한 논의를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이들의 논의에서의 논점은 이거라고 생각한다.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말로 본질을 흐리므로 사회적 약자의 현실이 개선되는 것을 도리어 어렵게 한다면 진보가 아닐 수 있다.' 즉,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말이 단어를 상당히 제약하므로 개인들이 '언피씨'해지지 않기 위해 소수자의 처우에 관한 논의 자체를 꺼내기 어렵게 만듦으로서 아예 논의의 핵심에 다가가지 못하는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진보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소수자 입장에서는 내 파이가 중요하지 번지르르한 말이 중요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나마 반대 측 논객 중 의미있는 논점이 있었던 스티븐 프라이가 주로 이런 논의를 전개했다. 물론 맞는 말이고 생각해볼 만한 논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생산적인 논의를 위해서는 여기서 조금 더 구체화가 필요할 것 같다.

 

1. 정치적 올바름이 소수자의 처우에 관한 논의를 정말로 방해하는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완전 개소리라고 생각한다. 임금 격차를 줄이고 합당한 복지를 마련하는 등 경제적 측면에서의 소수자의 물질적인 파이를 보장하는 것 물론 필요하지만, 소수자 개인이 공동체에 안전하게 소속되는 것도 그 파이의 일부다. 인간은 빵만으로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 논의에는 구체적인 사례가 전혀 없기 때문에 허황된 소리임을 알 수 있다. 단지 상상만으로 얘기하는 공허하고 막연한 우려라고 생각한다. N워드 F워드 쓰지 않고 흑인, 동성애자에 관한 논의가 어려운가? 한국 사회로 따지자면, 메갈녀 김치녀 호모 ㄸㄲㅊ 쓰지 않고 여성 인권이나 성소수자 인권 논의가 어려운가? 개소리가 따로 없다. 조던 피터슨이 자꾸 결과의 평등을 주장하면 안 된다고 하는데 **(심한욕)이다. 결과의 평등 주장하면 왜 안 되는가? 기득권이 파이를 이미 다 가지고 있으니까 하는 소리다. 자기 손에 파이가 없어도 결과의 평등 주장하면 안된다고 할까? 역시 남의 슈즈를 신어보지 않은 입장에서의 개소리라고 생각한다.

 

2. 소수자 입장에서 뭣이 중헌디?

위에서 했던 이야기와 일부 중복된다. 소수자 입장에서 중한 것이 오직 한 가지인가? 경제적인 이해관계를 정책적인 측면에서 고려하는 것과 소수자를 배제하는 폭력적인 문화를 개선하는 일은 함께갈 수 없는가? 전혀 대립하지 않는 두 가지를 대립시키는 논점 이탈의 이유가 무엇일지 주의깊게 생각해보면 그 의제 설정에서 소수자의 이해관계는 배제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기득권의 시각에 입각한, 논의되는 자와 논의하는 자, 논의 대상과 논의 주체로 분리하며 이들을 타자화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3. 우리의 일상은 공론장이 아니다.

우리는 정책결정권자들이 아니다. 논의를 해야하는 자리에서는 PC가 있든 없든 그것이 그들의 일이기 때문에 논의를 그냥 한다. 우리가 대의제를 통해 권한을 위임한 정치인들이 말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소수자의 처우에 관한 필터없는 다양한 의견이 터져나오는 것보다 짧고 강력한 한 마디의 법을 원한다. 공론장에 대한 몰이해와 자의식 과잉으로 입에서 나오는대로 지껄이는 몇몇 인간들의 즐거움을 위해 누군가의 인권을 짓밟는 경솔한 발언을 끊임없이 듣지 않아도 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의미도 실익도 없는 논의인 것을 알면서 아무도 안 물어본 자신의 의견을 망설임 없이 입으로 내뱉는 자들 때문에 일상의 평온을 위협받지 않는 세상을 원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PC가 보장해줄 수 있다. 

 

도대체 PC의 해악이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조금 더 솔직해져보자. 이런 주장을 하는 측의 입장은 그저 사석에서 이전처럼 '편하고' '솔직하게' 소수자 혐오를 하지 못해서 불만인 것을 말만 번지르르하게 두른 것이 아닌가?

 

그러나 혹자는 현실에서 PC에 대한 반감으로 트럼프가 등장했다는 주장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PC가 창궐하지 않았다면 트럼프는 없었을까?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아닐 것이다. 공상적인 논의니까 의미 없겠지만 PC가 있든 없든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투표하고 그가 대표하는 가치에 이해관계가 결부된 사람들은 언제라도 트럼프를 뽑았을 것이다. PC가 있다면 그들이 드러내놓고 세력화할 수 없을 뿐이고 지금으로서는 그걸로도 충분하다.

 

물론 이 책에서는 논의 자체가 PC가 옳은지 틀린지가 아니라 이것이 진보인지 아닌지가 논점이다. 사실은 내가 알고 싶었던 건 이런 부분이었는데 책에서 이렇다할 답을 찾지 못했다. 저 논의를 하려면 우리는 여기서 진보가 무엇인지 정의할 필요가 있다. 진보가 무엇인지는 지금 이 페이지 안에서 수많은 전제들을 깔고 정의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기존 체제와 질서에 대항하고 변혁하는 사상 및 세력, 즉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려는 게 진보라는 것에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적인 올바름은 기존 사회를 변혁하는가? 이것은 또 세부적인 논의로 나뉘는데, 논의에 개인적인 생각을 답하기보다는 한국 사회의 맥락 속에서 정치적 올바름을 필두로 두 가지의 질문을 던져보겠다.

 

1. 우리가 추구해야할 정치적 올바름이란 무엇인가?

미국의 대통령은 트럼프고, 유튜브에서는 혐오 장사를 통해 어그로 수입을 땡기지만, 한쪽에서는 디즈니나 마블에서조차 겨울왕국, 블랙팬서, 캡틴마블 등 기존 시리즈와 달리 젠더 관점을 인식한 작품을 내고 있다. 자본주의와 현실 정치를 넘나들며 최저선에 대한 다양한 합의가 공존하는 시대다. 기득권을 가지고 실패한 루저 시대의 정서와 포퓰리즘, 사회의 변화에 저항하고자 하는 백 래시, 자본주의와 팔리는 페미니즘 혹은 혐오 장사 등 이런 상황에 영향을 미치는 수만가지 흐름에 관한 논의를 하려면 끝도 없겠지만, 다른 얘기를 차치하고 최근 한국 사회만을 중심으로 보자.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 사회의 소수자 담론은 주로 성차별을 둘러싸고 논의된다. 한국 사회는 정치적 올바름은 커녕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는 인식조차 없다. 책에서 정치적 올바름이 논의를 방해한다는 명제 자체가 전혀 와닿지 않았던 게 바로 한국 사회에서는 전혀 작동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다. 성희롱 성추행이 만연하고, 여성 혐오적인 캐릭터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조차 논란이 되고, 디지털 성범죄를 저지르지 말아야한다는 것조차 합의가 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정치적 올바름이 진보인지 아닌지를 논할 수 있을까? 그저 우리 공동체를 의식하며 정치적 올바름을 조금이나마 탑재해달라고 1부터 설명해야할 수준이다.

 

2. 우리는 진보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또한, 한국 사회에서는 오버워치 배틀필드 파판 등 게임을 중심으로 PC가 본격적으로 대중들의 화두가 되었다. 주로 폭력적인 씬을 제거하는 것이 '재미(+게임 고유의 가치 등등)'를 훼손한다는 논의였다. 아직도 이런 논의를 하고 있어야하는지 정말 속이 터진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봐도 과연 나의 재미는 누군가의 인권과 대립할 만한 중대한 가치인가? (미러링은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한 방식이지만) 메갈리아의 출현 이후 '미러링'으로 인해 피해자라며 광광대는 특정 세력들을 생각해보면, 한국 사회는 아직 변화를 감당할 그릇이 안된다. 당연히 진보도 멀었다. 물론 그렇다고 진보하지 말자는 건 아니다. 한 걸음 뗄 때조차 여기저기서 발목을 잡으니, 일단 크게 한 걸음 떼어 나아가야지 진보인지 아닌지 논의할 단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미러링 방식에 동의하지 않지만 이를 저지할 마음이 없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우리는 지금 정치적 올바름이 진보인지 아닌지를 떠나 소수자에게도 인권이 있고, 이들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환대하고 배제하지 않는 것이 인권이라는 논의를 해야 한다. 따라서 정치적 올바름이 진보이든 아니든 현 시점에서 우리가 추구해야할 가치인 것이 자명하며, 그 과정에서 사회의 거대한 변혁을 동반하기 때문에 물론 진보이기도 하다는 게 오늘까지의 나의 생각이다.